미국의 짧고도 긴 외교사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한자어를 “아름다울 미, 나라 국”자를 사용한다.우리나라는 처음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의 ‘아미리가(亞米利加)’ 란 말에서 ‘쌀나라’ 미국(米國)이라고 표기했었다.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일본의 것을 버리고 중국에서 쓰고 있던 ‘미리견국(美利堅國)’을 줄여 ‘미국(美國)’ 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그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5~60년대 미국은 우리에겐 아름다운 나라, 희망의 나라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한자어를 “아름다울 미, 나라 국”자를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처음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의 ‘아미리가(亞米利加)’ 란 말에서 ‘쌀나라’ 미국(米國)이라고 표기했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일본의 것을 버리고 중국에서 쓰고 있던 ‘미리견국(美利堅國)’을 줄여 ‘미국(美國)’ 이라고 표기하게 되었다. 그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5~60년대 미국은 우리에겐 아름다운 나라, 희망의 나라였다. 미군을 졸졸 따라 다니거나, 미국으로의 이민이 최고의 이상이었던 시기였다. 미국으로의 유학이 장려되고, 미국의 문화가 고급문화라고 인식되는 현재의 우리사회에서는 미국은 여전히 아름다운 나라이다. 미국의 외교사 – 애초부터 보여준 미국의 패권국가로서의 모습미국의 외교사는 19세기말을 기점으로 크게 구분된다. 그 이전의 외교를 먼로주의 혹은 비개입 고립주의(중립주의)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외교는 적극적인 개입주의, 팽창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건국 이루 2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에 급속한 성장과 팽창을 거듭했었다. 초기 ‘미국의 유럽으로부터의 격리’에 따른 고립주의는 미국을 평화롭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먼로주의 역시 유럽 강대국의 미주대륙으로의 진출을 반대하면서 미국 자신의 세력을 팽창시켜갔다. 이후 1898년의 미국과 스페인 전쟁은 미국 외교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하와이, 쿠바, 필리핀, 괌섬, 푸에르토리코 등의 영토를 얻으면서 국제정치의 각축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17년까지는 세계대전에서의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였으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한 작전에서 미국은 전략을 수정하게 되었다. 윌슨의 ’14개 조항’ 발표는 미국의 외교가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쟁의 복구로 여력이 없게 되자 미국은 본격적으로 세계의 패권국가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에 대한 봉쇄, 반격정책은 세계 각 국가와의 상호방위조약과 경제적 원조로 이어져가면서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냉전을 강화시켜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군력과 해군력의 보유, 원자폭탄의 독점, 거기에다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미국은 세계 패권국가로서의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였으며, 여타의 다른 국가에게도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였다. 전후 당시 소련이나 여타 공산주의 국가의 전력을 볼 때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군비확장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음에도 미국은 오로지 방공이란 이름으로 세계의 정세를 이끌어갔던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 대항해야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계속되었던 군사개발은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통해 미국의 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무대였던 것이었다. 미국은 아직도 식민지 지배국가이다?과거 2차 대전 당시에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05년 미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에 일본으로부터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받고자 했다는 사실도 국사 책에 잘 나와있다. 그러나 지금도 미국은 식민지 영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현재 미국의 영토는 잘 알려진 본토 48개 주와 알래스카, 하와이의 2개 주 총 50개 주와 1개의 수도구 외에 해외에 푸에르토리코, 사모아 제도, 웨이크섬, 괌섬 등을 ‘보유’하고 있고 신탁통치령으로의 캐롤라인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는 그곳에서는 식민지 지배 국가로서의 정치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독립하려는 세력을 끝없이 억압하면서 군사거점으로써 미국은 그곳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캐롤라인 제도의 경우 에스파냐, 독일, 일본에 이어서 현재의 미국까지 계속적으로 식민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이며, 관광지로 유명한 괌섬 역시 미국의 수입원으로서의 역할과 군사거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 – 우방국가?미국은 한국이 최초로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은 서양국가다. 미국은 조선에 영향력이 있던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에게 조선과의 수호통상을 알선해 주도록 요청하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는 이후의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와의 수호조약의 기본이 되었으며, 서양국가들에 의한 조선의 수탈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서양국가였고, 한국으로부터 철수한 최초의 국가였다. 미국 육군장관과 일본수상 사이에서 이루어진 소위 ‘태프트-카스라 밀약’에 의해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화를 인정받게 되었고,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철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패망 직후 또다시 먼저 영향력을 행사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를 중요하게 여긴 미국은 소련에 의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38도선 이남에 군사를 주둔하여 군정을 시작하였으며,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제안, 일방적으로 한국의 장래를 결정하였다. 신탁통치 문제로 인해 혼란해진 한반도로부터 1947년 미국은 또다시 군사철수를 결정하게 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국전쟁은 또다시 미국의 대규모 개입을 야기시켰고, 한국전쟁은 미국이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한반도에 행사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후 한국의 역사는 미국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후복구를 위해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계속해 왔고, 현재 무역, 자본도입, 합작투자 등의 경제 전반에 걸쳐 미국의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은 우리에게 우호국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미국의 패권국가로서의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지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만큼 현재의 미국은 견고하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종식과 중국 등의 급속한 성장은 한국에게도 미국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한국의 영원한 우방이라고 외치는 미국의 모습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미국의 영향력 속에서 한국은 미국을 다시금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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