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과 정치권을 오가는 폴리페서, 이들은 누구인가?

지난 18대 총선에서 가톨릭대 손숙미 교수, 중앙대 이군현 교수 등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대거 당선됐다.그리고 언론들은 앞다퉈 ‘폴리페서’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교수 출신 의원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정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그러나 교수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권력을 지향한다는 지적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최근에는 일부 교수들이 유력한 정치적 인사로 거론되면서 폴리페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가톨릭대 손숙미 교수, 중앙대 이군현 교수 등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대거 당선됐다. 그리고 언론들은 앞다퉈 ‘폴리페서’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교수 출신 의원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정치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교수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권력을 지향한다는 지적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교수들이 유력한 정치적 인사로 거론되면서 폴리페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것이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폴리페서들포털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폴리페서(polifessor)’는 정치를 뜻하는 ‘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professor’의 합성어다. 이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실현하려 하거나 그러한 활동을 통해 정계에서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뜻한다. 이 용어는 지난 노무현 정부 때 대학교수들이 주요 요직으로 대거 기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정치교수’, ‘어용교수’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이러한 폴리페서의 개념은 한 가지 의미로 풀이되지 않는다. 대학교수들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행태가 나타난 때부터 지금까지 폴리페서는 다양한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교수들이 정치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초기에는 반정부 활동을 하는 경우를 폴리페서, 즉 정치교수로 불렀다. 서경대 노시평 교수(공공인적자원학부)는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을 주로 폴리페서로 평가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됐을 당시 정부는 협정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을 탄압했다. 경향신문 1965년 9월 7일자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를 포함한 6개 대학 학생들은 비상시국선언을 통해 “학원탄압을 강요하는 청와대 비서진과 정부 내각의 퇴각을 촉진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치적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교수와 학생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장이욱 전 서울대총장 또한 같은 해 11월호에 기고한 ‘대학의 혼을 곡한다 – 소위 「정치교수」의 파동을 보고’라는 글에서 대학에서 ‘폴리페서’를 제거하려는 행정조치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행위는 정당하며 이를 억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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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의 시국선언이 계속 이어지자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은 시국선언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 동아일보

제 3공화국에 들어서 교수들이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자, 권력을 얻기 위해 지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폴리페서라 불렸다. 반정부적인 교수, 즉 ‘정치교수’와 정치권에 진출하는 교수들을 동시에 폴리페서라 칭한 것이다. 노시평 교수는 칼럼 ‘폴리페서와 싱크탱크’ 에서 “당시 일부 교수들은 군부정권의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정권의 입지를 넓히는 이데올로기 작업을 위해 대거 등용됐다”고 말했다. 제 3·4공화국에서의 평가교수단, 민주공화당, 유정회 등이 이에 속한다. 당대 경제개발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서강학파도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교수 집단이다. 그 당시 일부 학생들은 이들을 ‘어용교수’라 부르며 이들이 대학 사회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 1989년 조선대학교에서는 6명의 교수들이 어용교수로 몰리자 손양수 교수 등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시키고 24명의 교수들을 직위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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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0여개 대학의 학생들은 어용교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 경향신문

이후 정권에서도 교수직을 가지고 있는 정치참여 인사들의 등장은 계속됐다. 노시평 교수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문민’정부를 부각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수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지식인 집단인 ‘중경회’가 중산층과 서민층을 국정운영의 중심 기조로 삼은 DJ 노믹스를 만들기도 했다. 이선 산업연구원 전 원장과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 숙명여대 윤원배 교수, 숭실대 이진순 교수 등이 이에 포함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을 역임한 윤영관, 허성만, 김대환, 김신일 씨 등도 교수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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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가 학회에서 정치학자들을 만나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해당 학회는 김 대표에게 “당선이 된다면 우리 학회 회원들을 몇이나 공천할 것이냐”고 물어 논란이 됐다. ⓒ 한겨레

“교수의 지위는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돼”군사 정부 당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교수에 대해 가해졌던 부정적인 시선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북대 김규종 교수(노어노문학과)는 “정치적 신념 없이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특정 대선 후보에 빌붙는 교수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교수는 “교수가 가진 지식과 능력이 출중하다면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간 사회 참여를 하겠다면 교수의 업무를 중단해야 한다”며 일부 교수들이 장기간 휴직을 한 상태로 정치에 참여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정치에 참여하면 교수로서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어려운데도 교수직을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노시평 교수 역시 “정치에 집중하게 되면 강의와 연구에 소홀해질 수 있다. 결국 교수라는 지위를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실제 서울대에서도 2008년 총선 당시 일부 교수가 교수직을 유지한 채 선거에 출마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연수 교수(체육교육학과)의 경우 총선에 출마하자 소속 단과대학에서는 권고 사직과 질병으로 인한 휴직계를 여러 차례 권고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를 거절하고 육아 휴직계를 신청했다. 이에 소속 대학이 받아들이지 않고 권고 사직을 다시 종용하자 김 교수는 강의를 배정받은 상태에서 경기 남양주 을 지역에 출마를 감행했다. 이에 서울대는 김 교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3개월의 감봉 처분을 내렸다. 이에 언론으로부터 ‘이러한 사태가 충분히 재발할 수 있도록 방관하는 경징계가 아니냐’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페서’는 없고 ‘폴리’만 있다?현직 장차관 인사 중에는 교수 출신이 많다. 전체 15개부 장차관 38명 중 11명이 교수 출신이다. 이 중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김창경 교육과학기술부 제 2차관은 현재도 교수직을 맡고 있다. 김규종 교수는 “물러날 때가 됐으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텐데 끈질기게 교수직에 매달려 있다는 점이 폴리페서들을 더욱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18대 총선에서도 교수 출신 후보자들이 대거 당선됐다. 18대 국회의원 295명 중 한 때 교수직에 있었거나 당선 이후 교수직을 역임했던 의원이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 민주당 손학규 의원, 안민석 의원 등 103명이나 됐다. 이 중 정교수 이상의 직위에 있었던 국회의원은 34명에 달했다. 또 현재 교수직을 유지한 채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의원들은 총 32명으로 이 중 정교수 이상의 직위에 있는 국회의원은 11명이다. 이에는 민주당 강창일 의원,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 이은재 의원 등이 있다.일부 의원들은 석좌교수, 초빙교수, 겸임교수직 등을 유지하고 있다. 해당 대학교 홈페이지에는 교수직에 있지 않다고 나와 있음에도 국회의원 약력에는 교수직에 있다고 표기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한 의원 사무실의 관계자는 “직접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른 의원 사무실의 관계자는 “지금 교수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초빙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약력에 교수직이라고 표기해도 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석좌교수, 초빙교수의 경우 국회의원 약력에 교수직이라고 명시할 때 지속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이다. 이는 일부 의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 교수직을 얼마든지 허위로 기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한편 국회의원이 석좌교수, 초빙교수직을 겸임하는 경우에는 해당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교원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관계자는 “석좌교수, 초빙교수 등의 경우에는 연봉을 누가 지급하느냐에 따라서 교수들을 관리하는 기관도 달라진다. 이에 학교 측에서도 해당 의원이 교수직을 실제로 유지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고 언급했다. 학교 측에도, 의원 측에도 문의했지만 실제로 일부 의원들이 해당 교수직에 종사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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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홈페이지 약력과 해당 대학교 홈페이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인물 검색을 통해 조사했다.

다시 일고 있는 폴리페서 논란최근에는 일부 보수언론에서 ‘신(新)폴리페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며 정치적 견해를 펼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수를 일컫는 말이다. 는 이러한 ‘신폴리페서’의 대표 인물로 서울대 안철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조국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세일 국제대학원 교수를 들었다. 이어 지난 10월 31일자 신문에서는 “이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기를 무기삼아 단번에 ‘주연급 정치인’으로 정치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교수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고려대 김일수 명예교수(법학과)는 “현실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연구에도 충실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며 “대중들에게 삶이 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선동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벗어난 것”이라 평가했다. 김 명예교수는 이어 “일부 교수들이 교수직을 갈아입을 수 있는 가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대학 사회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 덧붙였다. 한편 현 폴리페서에 관련된 논란에 대해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들은 대체로 말을 아꼈다. 이정복 명예교수는 “폴리페서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만큼 한 마디로 평가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강원택 교수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바가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교수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폴리페서’에 빗대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김규종 교수는 “보수언론에서 일부 진보 성향의 교수들에 대해 새롭게 규정하는 폴리페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정치적 영향력만 가지고 폴리페서를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날을 세웠다. 새로운 소통방식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단순히 폴리페서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시평 교수는 교수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현상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싱크탱크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폴리페서에 대한 정의와 구체적인 평가는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눈여겨볼 점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까지 교수직의 본분을 벗어나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선거철마다 불거져 나오는 폴리페서 논란. 2012년 총선,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폴리페서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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