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사회의 권력체제는 어떻게 생겨났나

서울대 학생사회에 ‘학생회’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였다.당시 대학가에는 1970년대에 학생회를 대체했던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학생자치기구로서의 학생회가 건설되기 시작했다.하지만 학생회가 전적으로 학생들의 자치기구로 성립된 것은 아니다.1980년대 학생운동은 사회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써클을 중심으로 한 소집단보다 학생들을 아우를 수 있는 보다 큰 조직을 필요로 했다.

서울대 학생사회에 ‘학생회’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였다. 당시 대학가에는 1970년대에 학생회를 대체했던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학생자치기구로서의 학생회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생회가 전적으로 학생들의 자치기구로 성립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사회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써클을 중심으로 한 소집단보다 학생들을 아우를 수 있는 보다 큰 조직을 필요로 했다. 학생회 건설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은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었다. 따라서 학생회는 학생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운동의 전위조직으로 학생회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목표는 아직 사회변화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학생회를 통해 참여하게 되는 것이었다. 2007년부터 여러 차례 학생회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양준용(사회 07) 씨는 “학생회가 처음부터 정치조직과 떨어져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학생회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생회의 구성 원리도 당시 학생운동에서 사용되던 조직 원리인 민주집중제를 사용했다. 민주집중제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존중하되 일단 결정된 사항은 중앙에서 강력하게 실행하는 것으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채택했던 방식이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비에트를 기본적인 의사결정의 단위라고 보고, 이들의 연합체로 국가를 상정했다. 따라서 소비에트들이 결정한 바를 집행하기 위한 권한은 중앙으로 집중하되, 소비에트 내에서는 민주적으로 의사가 수렴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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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용 씨는 학생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설명했다.

오늘날 학생회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집중제적 원칙은 여러 측면에서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과/반/학부와 같은 기초단위의 학생회에서부터 단대 학생회와 총학생회에 이르는 각 급에 모두 총회와 운영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이 총회와 운영위원회의 관계가 전형적인 민주집중제적 원칙을 따르고 있다. 서울대학교 전체를 포괄하는 전체학생총회가 자주 열리지 못하는 것처럼 각 급에서도 총회는 원칙적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주 열리지 못한다. 이런 총회를 대신해서 업무를 집행하는 운영위원회가 존재한다. 운영위원회는 각 단위에 소속된 대표자들이 모여서 여는 회의로, 대부분의 결정은 여기서 내려진다.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운영위원회의 의장이기도 한 학생회장이 그 결정을 수행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다. 기초단위보다 높은 단대 학생회나 총학생회에서는 운영위원회보다 확대된 대의기구인 학생대표자회의를 여는데, 이 회의가 사실상 총회 대신 정기적으로 열리며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존중되는 것은 단순한 대의(代議)가 아니라 학생사회에서 나온 일반의지의 실현이다. 이를 인민민주주의라 하는데, 각 대표자는 학생들의 의지에 구속돼 이를 대신해 전달하는 확성기에 불과하다. 근대적인 의회제도가 자유위임의 원칙에 따라 국회의원이 재량껏 대의하도록 인정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학생회 체제는 능동적 참여자를 요구해 학생회 체제에서 학생회장의 권한은 원칙적으로 운영위원회와 학생대표자회의를 통해서 견제 받도록 돼있으나, 사실 학생회장에게 주어진 권한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학생회장은 운영위원회의 의장으로 의사결정과정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다른 운영위원과는 달리 별도로 구성된 집행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학생대표자회의에 상정되는 안건을 결정할 권한은 사실상 운영위원회에 위임돼 있다. 학생사회의 집행력이 학생회장과 운영위원회에 집중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권한이 막중한데, 학생사회에서 어떤 것이 논의될 것인가를 결정할 권한도 학생회장과 운영위원회에 위임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회가 성립되던 초기에는, 학생회장을 비롯한 지도부에게 의사결정과정 운영이나 의제설정과 같은 광범위한 권한이 위임돼 있다고 해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학생회와 학생사회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의 지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학생회가 학생과 유리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양준용 씨는 “선배들이 초기 학생회를 묘사하는 것을 듣다보면, 당시 학생들은 운영위원회나 학생회장에게 권한을 ‘위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사실 그때는 의논하는 자리가 있으면 많은 학우가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민주집중제적 원리를 채택한다는 것은 오히려 참여민주주의적 의사결정과정을 의미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즉 대표자가 광범위한 논의 끝에 나온 결정에 구속되는 것이었지, 대표자에게 어떤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위임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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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울대 도서관 점거 당시 학생들은 토론회를 열어 논의에 직접 참여했다.

하지만 지금은 논의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적다. 기초단위의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인원이 적은 것은 어느새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전학대회나 단학대회에 참여해야할 대표자들도 절반 가까이가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단대 학생회장들로 구성된 총학생회 운영위원회 조차 참석하지 않는 위원들이 많다. 지금의 학생회에는 참여하는 학생은 없는데 막중한 권한만 위임돼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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