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G_0### |
| 해마다 연말이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집중 단속과 강제 추방이 이뤄진다. 사진은 2007년 11월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에 항의하는 집회. ⓒ오마이뉴스 |
“한국 대통령 선거 돌입 첫날, 이주노조 임원 전원 연행!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들만의 정치판’에서조차 희생물이 되어야 하는가!” 2007년 11월 27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에서는 성명서를 내 분노를 표출했다. 연말이면 실시되는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은 대선을 앞두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11월 14일에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명백한 무력시위로 이주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이 건설한 지역공동체까지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규탄했다. 해가 바뀌어도 사정은 같았다. 2011년 11월 현재 인천·평택·수원·김포·대구 지역에서는 이주노동자 집중단속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1월 8일에는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 한 명이 인천에서 단속을 피하다가 붙잡혀 폭행 당한 뒤 외국인 보호소로 이동하는 도중에 차에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인천지역이주운동연대에서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책임 인정을 요구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저임금 단기순환’ 중심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은 “이주노동자가 국민은 아니지만 사회 구성원이고 일할 권리가 있다. 당연히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면서 “하지만 정부에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이주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하는 한국 정치의 실상을 성토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는 것부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신당 홍원표 노동담당정책위원은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출국시키거나 집회 참여를 체류 자격을 박탈하는 사유로 삼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수단과 기본적 사회 참여의 통로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한국 뉴스도 정치도 잘 몰라요그렇다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정치를 자세히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 심양 출신으로 국내 식품 업체에서 세척 업무를 맡고 있는 성영애 씨는 “한국에서 6년째 지내고 있지만 정치에 대해 기본적으로 잘 모른다”고 말했다.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는 중국 연변 출신인 최용 씨도 “한국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기 어렵다”면서 “외국인 출신 노동자라면 다들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정치 현실에 어두운 가장 큰 이유는 미숙한 언어능력이었다. 네팔 출신의 어디가리 더서라테 씨는 “집에 TV가 없어서 뉴스를 보고 싶어도 못 본다”며 “한국어를 잘 못해서 신문도 읽지 못한다. 한국어를 잘하면 정치에 더 관심이 생길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네팔 출신의 버지르만 씨도 “한국어 뉴스를 보기가 힘들어 한국어를 잘하고 싶다”며 “영어가 편해 한국에서 외국 방송을 더 열심히 봤을 정도”라고 털어놨다.이주노동자의 한국 정치 인식에 대한 사회의 관심 부족도 문제다.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이주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직접 듣기보다는 인권 침해를 받은 피해자를 조사하고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캠페인 팀의 변정필 간사는 “피해자들과 함께 활동한다기보다는 회원들의 캠페인과 로비 등을 통해 정부의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수준”이라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활동의 한계를 인정했다.
| ###IMG_1### |
| 변정필 씨는 “피해자들과 함께 활동한다기보다는 회원들의 캠페인과 로비 등을 통해 정부의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수준”이라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국제앰네스티 활동의 한계를 인정했다. ⓒ김명신 수습기자 |
참여정부 이주노동자 정책의 ‘빛과 그림자’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생계와 밀접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성영애 씨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불법체류자도 중국에 갔다 올 수 있게 하고 중국에 갔다 오면 1년 비자를 내주기도 했다”며 “중국 교포가 혜택을 받은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참여정부는 2006년 중국 국적을 가진 동포 및 구소련지역 거주 동포가 자진출국할 경우 1년 뒤에 재입국과 취업을 보장하는 ‘동포 자진귀국 지원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최용 씨는 “우리는 한국에서 혜택 받는 만큼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다음엔 어떤 혜택이 있을지 기대하기도 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집집마다 한국 TV를 보는 등 한국 정치에 대한 중국인과 교포의 관심이 최고조였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시행돼 좋았다”고 지난 정권을 평가했다. 최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는 특별히 좋아진 점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경제 상황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 씨는 “월급은 크게 차이가 안 나는데 그간 환율이 올라 중국에 위안화를 이전보다 덜 송금하게 된다”고 말했다.한편 참여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에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참여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고용허가제’와 ‘단속 추방’을 두 축으로 한다. ‘고용허가제’는 정부에서 2003년 발의해 2004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이주노동자 정책의 취지는 미성년이주노동자의 숫자를 줄이고 대신 이들을 등록된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변정필 간사는 “하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 숫자를 줄이는 방식이 이주노동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이들의 체류를 합법화하는 게 아니었다. 무조건 미등록자를 쫓아내 수를 줄이는 거였다”고 비판했다. 이주노조 우다야 서울지부장은 “민주당이 집권하면 한나라당보다 서민층과 약자를 더 배려하는 정책을 펴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실시됐다”며 “오래 일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되고 일할 권리도 뺏겼다.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배려가 없었던 게 아쉽다”면서 참여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의 한계를 꼬집었다.
| ###IMG_2### |
| 이명박 정부의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을 규탄하는 결의대회 홍보물. 하지만 ‘집중 단속’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다름없이 실시됐다. ⓒ이주노동자의 벗 |
이주노동자 목소리 들을 단체 부족해… 연대 세력은 진보정당 정도이런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은 진보정당과의 연대에 희망을 건다. 이주노조 우다야 서울지부장은 “민주당만 해도 이주노동자 문제가 큰 이슈가 되지 않으면 연대 활동에 잘 나서지 않는다”며 “대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많이 활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진보정당을 많이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우다야 지부장은 “두 정당은 이주노조와 연대해 단속 추방 반대 집회에 참여하기도 한다”며 “몇 달 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최근 연대 활동이 줄어들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민주노동당 대변인실 이승환 언론부장은 “민주노동당은 중앙당은 물론 지역 시도당 차원에서도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번달에도 인천시당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 강제추방 반대 기자회견을 지역 단체와 함께 조직했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홍원표 노동당담정책위원은 “현행 정당법상 당원은 국민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진보신당에서는 이주노동자에게 국민과 마찬가지로 당원의 권리를 준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대의원직을 맡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당장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한 실정이다. 홍 위원은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에는 이주노동자 당원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강제출국된 상태고 남은 숫자도 정확히 모르겠다”면서 “현재 당에도 여력이 없어 이주노동자만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놨다.“이주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을 주자”이주노동자들이 국민처럼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같은 사회 구성원인데도 투표권이 없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창구가 없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실 이승환 언론부장은 “장기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 투표권 부여 등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정치적 기본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대안을 내놓았다. 진보신당 홍원표 노동담당정책위원도 “굳이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현행 영주권자에게 부여하는 각종 권리 규정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출신 노동자 최용 씨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참정권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의 타잉리 씨는 “우리가 투표할 수 있다면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을 차별 없이 대우할 것 같다”면서 이주노동자의 참정권 부여 방식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의 정영섭 사무국장 역시 “자기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데 관심을 가지겠나. 투표권을 주는 게 이주노동자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분석했다. 정 사무국장은 “하지만 이주노동자 기본권 보장 등 워낙 급한 문제가 많아 현재 이주노동자의 투표권을 요구하는 움직임까지는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IMG_3### |
| 우다야 지부장은 “무엇보다도 전체 노동자 계급이 하나가 되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며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보듯 세상이 노동자들을 위해 0.1%라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김명신 수습기자 |
“정권 교체로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 중요한 건 노동자 계급의 단결”하지만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정권 교체나 정치 참여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주노조 우다야 서울지부장은 “이주노동자들도 정당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정 정당을 선택해 이들의 정책을 지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정당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나름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잘 살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우다야 지부장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덕분에 하루 아침에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정당 정치 밖의 노동운동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셸프라 니마 씨는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을 보면 내 일 같다는 생각에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시간이 없어서 노동운동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고 서툰 말로 전했다. 우다야 지부장은 “한진중공업 사태는 대체로 노동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주노조도 공감하고 지지했다”며 “한국 대기업들도 반성을 하고, 이로써 세상이 노동자들을 위해 0.1%라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고 노동운동의 앞날을 밝게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