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는 극우 기독교 원리주의자에 의한 테러가 발생해 80여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체포된 범인은 이슬람교도를 유럽에서 몰아내야한다는 발언을 하며, 이질적인 이슬람문화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26일, 한국의 라디오 방송 CBS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외국인범죄척결국민연대 조동환 공동대표는 한국에도 노르웨이와 같은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든 무슬림이 사는 데는 폭탄테러가 안 일어나는 데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다문화정책에 대한 반대가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노동자대책연대 박완석 상임대표는 “정부는 다문화라는 이름만 붙으면 예산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며 “문제는 그들이 우리와 동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동화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들에게 혜택을 줘가며 다문화주의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낯선 사람들과 시작된 다문화사회 다문화사회를 오래 전부터 지향한 서구와는 달리, 한국은 본격적인 다문화정책을 도입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처음 다문화주의가 정책의제로 등장한 것은 2005년 참여정부 시기였다. 그 이전만 해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이주노동자처럼 언젠가 떠날 사람들이거나 귀화인처럼 한국에 동화됐거나 또는 동화돼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했다. 그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적 접근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 두 가지 인구학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다문화정책이 비로소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나는 이주노동자 유입의 증가고, 다른 하나는 국제결혼의 증가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며 한국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2005년 참여정부는 처음으로 다문화주의가 공식적인 정책 지향점임을 밝혔고, 2006년부터는 정책과 관련된 입법이 준비됐다. 처음 제정된 법은 2007년에 만들어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으로, 당시 100만 명에 달하는 체류외국인이 한국사회에 잘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어 2008년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만들어져 지금도 유지되는 다문화정책의 기간이 형성됐다. 다문화정책은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다문화정책의 주 소관부처는 법무부 산하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와 여성가족부다. 전자가 주로 외국인에 대한 정책을 담당한다면, 후자는 한국국적을 획득했거나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에 대한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담당하는 업무는 다문화가족지원법에 의해 규정된 것인데, 그 실질적인 업무는 주로 재단법인 한국건강가족진흥원이 관리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위탁돼 있다. 전문 인력과 시설을 갖춘 법인과 단체를 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 지정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나 복권기금과 같은 공공재원으로 지원을 한다. 이렇듯 표면적으로는 정책영역에서 다문화주의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다문화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지 않았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조직팀장은 “당시 정부는 일단 ‘다문화’라고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몰랐다”고 말했다. 본래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차이를 동화나 통합을 통해서 제거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정책적 수행은 문화적 이질성을 사회가 감내할 수 있도록 제도를 통해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 정부는 외국인과 이민자에 대한 정책을 다문화정책으로 지칭했지만, 그 내용은 다문화주의라는 가치를 담아내기보다 인구나 노동력과 관련된 사회정책으로 간주했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및 출생률 감소를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통해서 해결하려했기 때문에 문화적 존중보다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을 우선했다. 그 결과 이주민에 대한 존중은 없고 대신 그 자리에 이주민을 도구로 여기는 생각이 대신 자리한, 전복된 다문화정책이 나타났다.
| ###IMG_0### |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자국의 문화재를 그림으로 그려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다문화가족’ 일변도인 한국의 다문화정책 정부는 처음부터 모든 체류외국인이 다문화정책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06년 ‘여성결혼이민자 가족 및 혼혈인, 이주자의 사회통합을 위한 종합대책’이 수립돼 첫 다문화정책이 탄생했으나 그 얼개는 다문화가족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단기체류자로 여겨, 이들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2009년에는 아예 정책의 이름을 ‘다문화가족지원개선 종합대책’로 바꾸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이 전혀 포함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를 정책대상에서 배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이 적절했던 것도 아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조직팀장은 “다문화가족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한 용어”라고 지적했다. 사실 “모든 결혼은 이질적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의 만남인데, 굳이 국제결혼가정만 다문화가족이라고 보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름과는 달리 다문화정책을 곧 한국에 대한 동화정책이라고 보고, 국제결혼을 통해서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에 대해 한국어 교육과 문화체험사업을 실시해 사회적 이질성만을 해소하려 했다.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목표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이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이렇게 실시된 사회통합정책으로서의 다문화정책은 표면적으로는 ‘다문화사회’를 지향했지만 결과적으로 단일문화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책의 구체적인 실현에 있어서 ‘상호성’에 대한 섬세한 고려는 무시됐다. 허오 팀장은 “사실 정책 실현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듯하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국제결혼이민자가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IMG_1### |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조직팀장은 한국 사회의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결혼이주여성을 가족을 재생산하는 도구처럼 여기는 시각에서 발생한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배우자의 신원보증 없이는 아예 체류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배우자가 신원보증을 철회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결혼이주여성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쉽사리 배우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려하지 않는다. 지난 5월 24일 베트남에서 온 황티남 씨는 아이를 낳은 지 19일 만에 남편의 칼에 52차례 찔려 사망했다. 많은 경우 결혼이주여성은 상황이 악화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야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제대로 된 지원 없이 방치되는 경우 여성이 사망하는 일까지도 발생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200개가 넘게 설치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런 극단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이 센터에서도 기본적인 가정상담은 제공하지만, 가정폭력이나 이혼과 같은 상황은 기관이 목적하는 ‘건강한 가족’과 괴리가 있어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법률지원과 같은 방법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이주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어 체류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보다 이주노동자의 수가 약 4배 많고 전체 체류외국인 중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가깝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다문화정책의 대상이아니라 노동정책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는 문화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저 저임금도 고맙게 받는 ‘비정규직’으로 취급된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다문화정책이 없는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개심만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박 상임대표는 “외국인노동자들은 기존 저임금노동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으며, 한국의 복지제도에 심각한 부담을 발생 시킨다”며 “심지어 그들은 한국에서 범죄도 저지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네티즌은 파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를 ‘파퀴벌레’,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를 ‘방구’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있다. 유럽에서 나타난 배타적 혐오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그들에 대한 배타적 감정은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 ###IMG_2###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국 사회를 도발적으로 그려냈다.” /> |
| 영화 <반두비>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한국 사회를 도발적으로 그려냈다. |
이런 상황을 타개할 대책 마련이 시급한데도 이들이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작 다문화정책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한국이주인권센터 송민주 상담팀장은 “노동부는 이주노동자가 기본적으로 노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에게 고용주와 다를 바 없이 대한다”며 “그러나 이들도 사람이고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법률상 지위를 따지며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 직장을 옮기려하는 경우에도, 고용허가제에 의해 4회를 초과하여 직장을 옮길 수 없다.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사장님 나빠요”를 말할 수 없도록 규제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의 필요에 의해서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지면 당연히 떠나야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해, 4번 이상 직장을 옮기면 체류허가를 말소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인권도 보호되는 것이 국제적인 규범이다. 유엔은 이미 1990년에 이주노동자권리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All Migrant Workers and Members of Their Families)을 채택, 2003년부터 발효시켰다. 이주노동자의 시민권(citizenship) 획득 여부를 문제 삼지 않고, 기본적인 인권의 측면에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접근했다는 것이 이 협약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진정한 다문화사회는 이해에서 출발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팀장은 “중요한 것은 한국의 ‘착한’ 시민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이라며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도와줘야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주인권센터의 송민주 팀장도 “이주노동자에게 우리의 시각으로 접근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문화주의가 어떤 절대적인 도덕률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문화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현 시점에서 다문화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쉽게 단언하기 어렵지만, 이런 현실적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시행되는 정책이 실패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이미 120만,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외국인인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먼 미래로 넘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을 아래서 이주민을 사회정책의 수단으로 취급한다. 결혼이주여성은 아이를 낳아야하고, 이주노동자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면 본국으로 송환돼야 한다. 이런 기능적 접근을 넘어서,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