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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부산역으로 향하는 5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아섰다. |
10/11월 호 마감 중에 5차 희망버스에 올랐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화려한 홍보 속에 사그라지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국제영화제 기간에 희망버스가 오면 외국인들에게 국격을 실추시킨다’는 입장을 밝혔다. 희망버스에 반대하는 상경시위가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다. 한편 언론에는 지난 3차 희망버스에서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돈을 받고 희망버스를 가로막았다는 것과 이번 5차 희망버스에서도 오물투척 등의 내용을 담은 보수단체의 방해문건이 보도됐다. 이런 모습에 몇몇 영화인들이 희망버스를 지지하기도 했다. 35미터 크레인 위 한 인간의 싸움보다 더 절절하고도 현실적인 영화는 없을지 모른다. 이런 마음을 품고 오른 버스 안에서 “국정감사에서의 국회 권고안에 따라 해고된 한진중공업 노동자 96명 모두를 재고용하겠다”는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발언을 담은 뉴스를 접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먼저 ‘그간 꿈쩍도 않던 조남호 회장이 이제야 한 발 물러섰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보수단체의 공격과 여론 악화가 걱정됐다. 벌써부터 트위터에는 이제 사안이 해결됐으니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와 5차 희망버스를 축제처럼 치르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300여 일에 가까워진 싸움에서 승리한 듯 들뜬 분위기였다. 이제 막 서울시청 앞에서 출발하려는 희망버스의 의미가 바뀐 건지 잠깐 동안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순간 2년 전 쌍용자동차 사태가 떠올랐다. 당시 사측은 농성이 이슈화되자 해고노동자들을 1년 후에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희망’을 찾지 못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17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군가에게 ‘해고는 살인이다.’ 6시 경에 도착한 부산의 첫인상은 ‘경찰들’로 시작됐다. 부산 톨게이트 앞에서부터 경찰버스와 경찰들이 가득했고 검문이 진행 중이었다. 버스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우측 갓길로 이동했다. 경찰은 버스 짐칸을 열어보고는 버스 안까지 들어와 검문을 시도했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반발했고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부산. 창밖으로 본 거리도 방패를 든 전경들과 경찰버스로 가득했다. 당초 부산역 부근에 하차해 역전에서 집회를 할 예정이었지만, 경찰이 버스를 막아 부산역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서 내려 역으로 걸어갔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부산역 반대편 인도에 모였다. 부산역 앞에서는 희망버스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은 부산역 방향의 횡단보도를 봉쇄했다. 전경들로 가득한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반된 구호가 울려 퍼졌다. 한 부산시민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빨갱이, 쓰레기, 김정일보다 못한 놈들이다”며 언성을 높였다. 다른 시민은 “해고 노동자들을 전부 복직시킨다는데 다 해결된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입장이 일부 보수파들의 의견이라고 보는 시민도 있었다. 그는 “부산시민들은 희망버스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재향군인회 등의 보수단체들은 시민들이 모이지 못하게 하려고 돈을 받고 모인 것이고, 불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이를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 우리가 의견을 물은 대다수의 부산 시민들은 불과 10m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며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의 해산명령으로 부산역 집회는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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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온 Julien 씨는 “독일 여행 중 한진과 김진숙 씨에 대한 뉴스를 처음 접했는데 직접 와서 보고 좋은 이미지를 느꼈다”며 “앞으로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참가자들은 부산역에서 남포동으로 걷기 시작했다. 남포동은 김진숙 씨가 고공 시위 중인 85호 크레인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홍보 문구와 천막들, 간이무대들로 가득한 부산극장 부근에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거기서 부산영화제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온 프랑스인 Julien 씨를 만났다. 그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김진숙 씨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있는 2주 동안 한국인들이 과도한 소비주의에 빠져있다고 느꼈는데 대안적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희망버스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8시 30분경 참가자들은 부산극장 앞에 모여 집회를 시작했다. 백기완 선생, 노회찬, 조승수 의원, 서울대 김세균 교수(정치외교학부) 등 노동조합, 시민단체, 대학생, 부산시민 등 주최 측 추산 4,000여 명이 참가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백기완 선생은 조남호 회장이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키겠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복직이라는 말은 틀리다”며 “정리해고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고 후 ‘복직’시키는 것과 부조리한 해고 자체를 ‘철회’하는 것은 다르다는 뜻이다. “쌍용자동차 때도 합의 다 해 놓고 아직도 안 지켜서 몇 사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오늘 당장 김진숙을 비롯해 박성호, 박영재 등 모두 현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도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지금 강정마을에서는 정부가 구럼비바위까지 깨부수고 발파하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노력만큼 보장받는 사회와 안전한 조국을 물려주는 때까지 강정 평화와 한진 희망은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해고 복직 투쟁 중인 혼다 씨 등 네 명의 일본 노동자들도 오키나와 지방 민요를 부르며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한진중공업 투쟁이 일본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많은 격려가 되고 있다”며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를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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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삶은 당신의 이익보다 소중하다.’ 부산극장 앞에서 주최 측 추산 4,00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10시 30분 경 영도대교로 향했다. 그런데 맑은 날씨에 영도대교로 향하는 참가자들이 비옷을 입기 시작했다. 물대포 때문이었다. 경찰은 지난 네 차례의 희망버스를 진압하면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시위대에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조준발사와 최루액 성분의 위험성 등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물대포가 등장했다. 전경들이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앞 부근을 빽빽이 막아서고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물대포에 주로 대학생들로 이뤄진 선두 대열이 흐트러졌고, 선두 대열에 있었던 어린 아이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대열 뒤쪽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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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경찰은 물대포에 최루액 성분을 넣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물대포를 맞은 참가자들이 생수로 얼굴을 씻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물대포 발사 직후 전경들은 방패를 앞세워 참가자들을 밀어붙였고 본격적인 진압과 연행을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뒤로 물러났고 전경 대열이 더욱 앞쪽으로 배치됐다. 참가자들과 대치를 유지하던 경찰은 영도대교로 향하는 사거리로 물러났다. 참가자들은 85호 크레인으로 향하기 위해 사거리로 향했고, 경찰은 다시 물대포를 발사했다. 전경들은 또 다시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기자를 포함해 선두에 서있던 참가자 59명이 연행됐고, 두 시간 가량의 대치 끝에 참가자들은 결국 영도대교를 건너지 못하고 부산극장 앞 BIFF광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경찰은 언론을 통해 “최루액이 포함되지 않은 물을 살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은 참가자들은 물대포를 맞은 부분이 따가운 듯, 주저앉아 눈과 얼굴 등을 생수로 씻고 있었다. 자정 이후 BIFF 광장에 돌아온 참가자들은 김진숙 씨를 만나려는 염원을 퍼레이드와 문화제를 통해 달래야 했다. 문화제가 진행되면서 취침을 위한 돗자리와 이불이 준비됐다. 인도 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올라왔다. 이불도 부족해 제대로 덮을 수도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친 몸을 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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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진압으로 부산극장 앞으로 다시 돌아온 참가자들은 부산극장 앞에서 문화제를 진행한 후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다. |
다음날 아침 7시경, 참가자들은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영도 85호 크레인으로 향할 채비를 했다. 떠나기 위해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각소리가 났다. 곧 수많은 전경들이 도로 곳곳을 봉쇄하고 참가자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짐을 챙기고 쓰레기를 정리하던 참가자들이 순식간에 뒤로 밀려났다. 영도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러 가는 골목에도 경찰이 죽 배치돼 있었다. 참가자들은 전체대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삼삼오오 길을 따라 내려와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영도로 가는 시내버스 안에서 한 주민 아주머니가 “왜 남이 사는 동네에서 못살게 구냐”는 불평을 했다. 버스기사는 “외지에서도 이렇게들 오는데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응수했고 순식간에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희망버스로 주민들이 어느 정도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누가 이 불편을 만들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 시내버스는 경찰의 제지 때문에 원래의 노선대로 운행되지 않고 있었고, 목적지였던 ‘한진중공업’ 정류장에서 서지 못했다. 거리가 떨어진 정류장에서 내려 30분가량을 걸어가 85호 크레인 앞에 도착했다. 이미 도로에는 경찰버스가 줄지어 있었고 전경들이 입구와 골목마다 배치돼있었다. 크레인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85호 크레인과 김진숙 씨를 볼 수도 없었다.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며 또다시 물대포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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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식사 후 참가자들이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경찰들이 도로 곳곳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
부산역으로 향하는 버스 창문을 통해 85호 크레인과 그곳에 걸려있는 ‘해고는 살인이다’고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무엇이 한 인간을 35m 크레인 위로 올라가게 했는지, 무엇이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을 그 크레인 앞에 모이게 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리 집회를 위해 모인 부산역에서 서울대 김세균 교수(정치외교학부)를 만날 수 있었다. 1차 희망버스부터 계속해서 참여한 김 교수는 “희망버스는 한국 연대운동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며 “한진 사태가 마무리된다하더라도 다른 정리해고 문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행 버스를 타기 바로 전, 도로에 세워진 트럭의 스피커에서 김진숙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이 꿈쩍도 않던 국회와 한진중공업을 바꿔 놨다.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그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 “우리가 내려가서 현장에 복귀하는 그 날까지 우리 즐겁게, 담대하게 투쟁!” 희망버스는 부산 영도로, 85호 크레인 위로, 희망이 절실한 곳으로 사람들의 희망을 품고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