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엔 도로가 없다고요?!
서울대 도로는 ‘도로’가 아니다. 현재 도로교통법은 형태성·공개성·이용성·공공성의 요건이 구비된 길만을 도로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캠퍼스 안으로 이어진 길은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에 공개성이 충족되지 않는다. 나아가 대학 부지는 본부에 의해 자주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므로 교통경찰권도 미치지 않는다. 1996년 대법원에서도 ‘(캠퍼스 내 도로는) 대학시설물의 일부로 공개성과 공공성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대학교 내의 도로를 도로교통법의 도로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를 최초로 남겼다.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로 몇몇 검사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서울대 캠퍼스만큼은 예외적으로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다. 5511·5513·5516·관악02 등 시내버스가 캠퍼스 안을 경유하기에 공개성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현실적으로도 다른 대학보다 몇 배나 넓은 면적을 갖고 있다는 점이 근거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6년 1월 13일, 1996년의 판례를 그대로 인정해 검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악경찰서 서기준 교통조사계장은 “대법 판례가 번복될 가능성은 적다. 도로교통법 상 캠퍼스는 마당 넓은 집이나 다름없다”고 언급했다.법령이 이렇다보니 같은 교통사고라도 캠퍼스 안에서 일어났는지, 밖에서 일어났는지에 따라 다르게 처리된다. 교통사고 발생 시 적용될 수 있는 법은 도로교통법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두 가지로 나뉜다.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발생한 사안만을 다루는 행정법이기에 캠퍼스 안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공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 보다 폭넓은 사안에 적용될 수 있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만이 유효할 뿐이다. 이는 도로교통법과 달리 형법의 특별법이다. 결국 서울대 안의 교통사고는 형법의 적용만 받을 뿐, 벌점 부과·면허 취소와 같은 행정 처분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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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 진입로에서 헬멧을 쓰지 않은 두 학생이 스쿠터에 합승을 하고 있다. 교내에서는 이들을 단속할 수 있는 법령이 없다.(사진 왼쪽) 정문 앞 횡단보도는 도로교통법 상 횡단보도와 구별된다.(사진 오른쪽) |
불법을 ‘불법’이라 하지 못하고
서기준 계장은 캠퍼스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 유형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소개했다. 첫째가 음주·무면허 주행이다. 이 경우에 행정처분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형사처벌도 피해갈 수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 한해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주·무면허 운전자가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켰을 경우에도 법망을 피해갈 여지가 생긴다. 서 씨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서울대 도로는 운전면허 수험생에게 주행 연습용으로 딱”이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두 번째로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다치는 사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에 형법이 적용돼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때도 캠퍼스 외부에서 나는 횡단보도 사고와는 확연히 차별된다. 캠퍼스 내의 횡단보도가 법의 보호를 받는 횡단보도가 아닌 까닭이다. 서 계장은 “원래 횡단보도의 설치 권한은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있는데 서울대의 횡단보도는 본부가 임의로 그은 페인트칠일 뿐”이라고 말했다.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경찰청에서 횡단보도를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나면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과실이 부과되지만, 서울대 안의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나면 과실상계를 해야 한다. 가해자가 100%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해 번거롭게 법정까지 가야 한다.뺑소니 사고도 문제가 된다. 적발될 경우 가해자는 형법의 처벌을 받지만 여전히 도로교통법에서는 열외인 이유에서다. 일반 도로에서는 대인 뺑소니 사고일 경우 최소 벌점 60점에서부터 최대 면허취소 4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캠퍼스 안에서는 뺑소니 사고를 저질러도 면허가 취소되기는커녕 벌점조차 부과되지 않는다. 형사처벌을 받고 나서도 떳떳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서 계장은 이 밖에도 학생들이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스쿠터를 이용하는 행태도 캠퍼스 교통위기를 증폭시키는 문제로 꼽았다. 그는 “스쿠터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안전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헬멧도 착용하지 않은 채 학내 규정속도인 30km/h를 무시하고 달리는 것은 자칫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캠퍼스가 관할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관여할 수는 없지만 학내에서라도 자치 규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함께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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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경찰서 교통조사계는 서울대 캠퍼스에서 제일 위험한 세 곳으로 본부 진입로, 관악사 삼거리, 공대 삼거리를 꼽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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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관 아래에 위치한 청원경찰. 교통경찰권이 미치지 않는 캠퍼스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
캠퍼스 내 교통사고 한 달 평균 4~5건에 이르러
캠퍼스가 교통경찰권의 사각지대이다 보니 단속도 허술하다. 청원경찰 관계자는 “법적 권한이 없다보니 불법 운전자를 적발해도 단속하지 못하고 훈계만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찰이라고 상황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서기준 계장은 “경찰도 캠퍼스 안에서는 손쓸 길이 없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대 정문과 낙성대 후문에서 단속 작업을 벌인다. 대학 도로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인정되면 적발되는 건수는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단속이 느슨한 만큼 교통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편이다. 청원경찰에 따르면 2007년 한 해 동안 캠퍼스 안에서 56건의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한 달 평균 4~5건인 셈이다. 이 중에서 전치 3주 이상의 인명피해가 생긴 사건은 자동으로 관악경찰서 교통조사계로 인계된다. 관악경찰서로 접수되는 사건은 한 달 평균 3건. 경찰서로 바로 신고되는 사건이 있음을 감안해도 꽤 많은 대형사고가 캠퍼스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사고 빈도가 가장 높은 곳은 세 곳의 삼거리로 밝혀졌다. 서 계장은 “교통사고가 제일 많이 일어나는 곳은 본부 진입로다. 신호등이 없는 삼거리 두 개가 연속으로 붙어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지적했다. 기숙사 삼거리, 공대 삼거리에서도 접촉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경사가 급격하기 때문에 감속이 쉽지 않다는 점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편 2007년에 일어난 전체 교통사고 중 30% 정도는 학내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열 가운데 일곱은 학내 구성원과 외부 출입자 또는 외부 출입자와 외부 출입자 사이에서 일어난 사고인 것이다. 학내 도로사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외부 출입자에게 30km/h의 속도규정이 충분히 숙지되지 않기 때문이다.청원경찰과 관리과는 협동해서 안전 운전을 장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리과 김찬원 사무관은 “캠퍼스가 워낙 넓다보니 종종 생기는 교통사고는 학교에서도 어쩔 수 없지만 청원경찰과 연계해서 단속과 훈계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보다 안전한 교통환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미 확보된 통계를 토대로 사고 방지에 힘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