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이용한 교수의 횡포는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준다. 단순히 교수 개개인의 인격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그 사례의 방대함과 피해의 크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떤 방식으로 근절될 수 있을까. 한국과 다른 미국 대학의 사례에서 해법을 찾아봤다. 물론 한국식 사제관계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에 대한 교수 고유의 위치라는 것은 존재했다. 그러나 교수가 불합리한 이유로 학생의 편의를 침해하는 경우, 이를 구제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있다는 점이 한국과 달랐다. 또한 그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는 학생들에 대해 ‘사제관계를 해친다’는 등의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는 문화 서양사학과 모 교수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학생의 발표를 들으면 중간에 중단시키고 강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인문대 학생의 제보에 의하면 단순한 코멘트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거의 세뇌 수준으로 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어요.” 뉴욕 시라큐스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조효정 씨는 한국 대학과 미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로 발언의 자유를 꼽았다. 그는 교수가 자신의 사상에 반한다는 이유로 학생의 발표를 중단시킨 사례를 보며 교수가 미성숙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학들은 무엇보다 의견의 다양성 및 그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을 추구해요. 그런 점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교수의 자질이 없어 보이네요.” 미국에서는 발언의 자유가 침해당한 경우 어떠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법적인 대처가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대학 내의 이러한 사례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 시라큐스대에 문의한 결과 교수는 일련의 절차를 밟아 처벌을 받는다. 우선 피해를 받은 학생은 학교 관할 내의 사법기관(office of judicial affair)에 정식으로 고소할 수 있다. 그 이후 해당교수가 발언의 자유를 침해한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근신부터 정직까지 처벌을 받는다. 오레곤 주립대학에서 응용경제학을 전공하는 임영아(농경제사회 02) 씨는 열려있는 문화가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미국 교수들은 학생들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평상시에 오픈 도어를 굉장히 강조하며 언제든 의문이 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하죠.” 간혹 교수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다른 방향으로 연구 방향을 잡는 학생들에게 낮은 성적이 돌아가는 일은 있다고 했다. 다만 그럴 경우 발표수업 당일에 중단시키는 방식보다는,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수와 학생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의견이 조율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정해진 일정, 원칙에 따라 작년 말 ‘훌륭한 공대 교수상’ 수상자 중 교육상 부문에 이름을 올린 한 교수는 조선해양공학과 학생들에게 악명이 자자했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수업으로 인해 다른 수업에 지장을 받고, 정규 학기가 두 달이 넘도록 수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수업이 있는 학생들은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결국 다른 과목의 수강을 취소하는 일까지 있었다. 유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 대학의 경우 수업과 관련된 일정은 거의 예외가 없었다. 간혹 예외가 생기는 경우더라도 학생들의 편의가 우선시됐다. 또한 상식적인 원칙을 거스르는 교수의 폭력은 학내의 절차 이전에 사법 절차에 의해 처벌이 가능했다. SVA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송민진 씨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에서도 가끔 5~10분씩 수업이 늦어지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다만 그 경우 학생들은 자신의 편의에 따라 자유롭게 강의실을 나가며 그에 따른 어떠한 불이익도 없다고 했다. 학기가 끝난 후 강의가 이어지는 것은 강의평가 시스템을 통해 대학 행정부서에 보고되며 학생들의 평가가 신랄할 경우 다음 학기 강의를 맡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조선해양공학과 모 교수의 문제는 비단 수업시간 및 기간 초과만이 아니었다. 학생 및 조교에 대한 인격모독성 발언들 및 심지어 체벌에 대한 제보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또한 흡연하는 학생을 반강제로 금연클리닉에 보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이런 일들은 학내의 절차 이전에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어있다. 비단 폭력에 대한 사법적 처벌수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그러한 처벌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격이 침해당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캠퍼스 분위기는 피해자의 고발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당연하게 만들어준다. -학생에 대한 인격적 대우 정치학과의 한 교수는 한 학생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학생을 소환한 적이 있다. 교수가 강의시간에 했던 발언들에 대한 학생의 심정이 담긴 포스트였다. 조효정 씨는 미국 대학의 경우에도 이러한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학생이 적은 글이 교내에 파장을 일으킬 정도로 영향을 준 글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죠. 그 글에서 학생의 마인드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됐다거나, 아니면 그 학생이 적은 글이 매우 흥미로운데 궁금하거나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충분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중요한 것은 대화의 내용이 일방적인 훈계인지, 아니면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대화인지 여부였다. 임영아 씨는 “무엇보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교수가 학생을 부른다 해도 한국처럼 긴장하거나 지레 겁 먹는 일들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울대, 강의평가가 아닌 교수평가가 필요 현재 서울대학교 강의평가시스템은 과목을 불문하고 동일한 질문 유형으로 구성돼있다. 주로 강의 커리큘럼 자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다음 학기에 교수들이 반영할 용도로 쓰인다. 이 경우 강의평가 결과는 교수들이 보고 그 결과처리 여부는 학생들이 알 방도가 없다. 이동현(원예생명 04) 씨는 현행 강의평가가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총학생회에서 만든 강의평가시스템 역시 공식적인 경로가 아니기에 교수들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기는 무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성적 공개하기 전에 클릭 몇 번으로 넘기는 평가가 아니라, 확실히 반영된다는 인식이 학생들에게 심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새로운 평가시스템이 필요하겠죠.” 현재 학생들에게는 비공개로 되어있는 강의평가에 대해 교수가 공개적으로 의무답변을 한다든지, 다른 학생들의 강의평가 내용을 열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다만 학내 커뮤니티에 학생들 입담으로 떠도는 악의적인 루머에 대해서는 확실한 검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격적인 모독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사법처리보다는 학생에 대한 공개사과 등이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경우 학점이나 진로 등에 대한 문제로 망설이는 학생이 발생할 경우 제도를 악용하는 교수에게 재임용 심사 시 페널티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한 것 같아요.” -왜곡된 사제관계 문화도 타파해야 김주용(작물생명 08) 씨는 현재 한국 대학 내의 사제관계가 그릇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도 엄연히 성인인데 인격적으로 모욕한다는 것은 교수들이 학생을 아랫사람으로 본다는 것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네요.” 교수의 악용되는 권위를 견제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당장은 바뀌기 힘들겠죠. 사제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 때문에 잘 활용하지 못 할 수도 있구요. 그대로 천천히 바뀌어가지 않을까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군대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데 대학사회는 더 빨리 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한국사회의 ‘정’문화가 왜곡된 결과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10년 이상 살다 온 이 학생은 “한국 사회는 ‘쿨’하지 못해서 문제가 많다”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한국에서는 소위 그놈의 정이라는 것 때문에 별개의 문제가 다 섞이는 것 같아요. 각자의 이익이 다른 것인데 교수도 선생님이라는 점 때문에 학생들의 이익이 침해당해도 말을 못 하는 거죠.” 시스템과 문화적 환경이 모두 갖춰져야 교수와 학생의 권력관계에서 오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아직 서울대 내에 인권침해 및 교수권력 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할 기구는 없는 실정이다. 설령 기구가 갖춰진다 해도 경직된 사제관계라는 풍토가 바뀌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그 혜택을 볼지도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