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생활협동조합(생협)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면 이미 서울대학교에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수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학교생활에 생협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당만 하더라도 관악 캠퍼스에서만 학생회관의 제1식당을 비롯하여 외부업체를 제외한 13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외부업체 역시 생협의 관리·감독 하에 있다. 학생들이 자주 찾는 매점 또한 관악 캠퍼스에 19곳, 연건 캠퍼스에 1곳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점, 문구점, 복사실 등 교육시설과 후생관에 주로 위치해있는 사진부, 컴퓨터부 등 일반후생시설도 생협에서 관리한다. 또 자판기 운영관리에 중앙도서관 사물함 관리까지 모두 생협 소관이니 생협을 거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기란 차라리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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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생협 이택만 사업부장은 ‘소비자 주권 운동’으로서 생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
생활협동조합? 너는 어디서 왔니?
생협은 원래 소비자 당사자 운동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의 저자 우석훈 씨는 그의 책 에서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극복할 대안은 정부와 시장이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는 것’이라며 ‘경제주체의 제3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 비영리 단체 등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생협은 경제적 약자로서의 소비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조직력에 의하여 자신들을 지키자는 데서 탄생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생협 이택만 사업부장은 “생협 설립의 법적 근거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기능은 소비자들이 힘을 합쳐서 소비자 주권을 실현시키는 데 있다”며 생협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생협은 대학생활의 당사자인 교원, 직원, 학생들이 경제적 문제 등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출자라는 방식을 통하여 구성된 자치조직이며, 장소적으로는 서울대학교에 구성돼 있지만 본부와는 별개의 단체로 독자적인 비영리법인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생협은 부총장과 학생처장을 각각 이사장과 부이사장으로 당연직화했고, 조합의 의사결정기관으로 학내 구성원인 교수, 직원, 학생이 참여하는 이사회 및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20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에는 학부생 4명과 대학원생 2명도 포함돼 있다. 연세대의 경우 입학과 동시에 생협 조합원으로 학생 전원을 가입시키지만 서울대의 경우 10,000원 이상의 돈을 출자해야만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이 사업부장은 “현재 학생 조합원 수는 800명 정도다.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라며 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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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협은 우리가 학교에서 매일 먹는 식사를 모두 총괄하고 있다. |
서울대학교의 생협은 특별하다?
그러나 명분상의 생협 설립목적 이외에 대학에 생협이 등장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생협 이규선 차장은 “식당을 운영하는 등의 영업활동은 학교의 특성상 관리하기 어렵고 경영전문화가 필요하다”며 대학 내 생협의 역할을 강조했다. 복지과 정기현 사무관 역시 “학생들의 더 나은 후생복지를 위해서라도 현장 전문 인력인 생협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실 서울대학교 생협은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1975년 ‘소비조합’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생협은 2001년까지는 서울대학교 내의 임의기구로 조직돼 지금과 같은 별도의 법인이 아니었다. 이규선 차장은 “그 당시 생협은 지금과 같이 영업활동으로 수익을 내고 있으나 국립대학의 산하 기구였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없었다. 제도의 결점으로 탈세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회상했다. 이런 법적 위상문제 때문에 1999년 8월에 공포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해 생협을 독자적인 법인으로 만드는 노력을 했고 2002년, 서울대학교 생협은 대학 중 가장 먼저 지금의 생협과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전국의 22개의 대학에서 생활협동조합이 구성돼 있으나 이는 4년제 대학의 약 10%에 불과하다.본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서울대학교의 생활협동조합은 국립대학교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 규모만큼이나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또 이를 위해 본부와의 관계 역시 긴밀할 수밖에 없다. 개인신상 유출문제와 충전형태의 불편함 때문에 사용이 중단된 구 S-CARD의 경우에도 추진 주체는 본부지만 그 사용에 있어서는 생협과 연결됐다. 정기현 사무관은 “복지과에서는 생협이 본부 산하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생협의 정책을 본부에 대변해 주고 또 생협을 관할, 감독하고 있다”고 생협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또 “생협이 원래 대학 내 기구였기 때문에 본부와 생협 사이에 인력 이동이 있었고, 현재도 본부의 퇴직이나 퇴직직전의 직원들의 경우 본부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협으로 다시 채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생협은 본부에서 공간의 구체적인 사용 용도를 확정하거나, 단과대학 자체에서 필요에 의해 후생복지시설로 이용하고 싶어 할 경우, 그 테두리 안에서 참가해 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서울대학교에서 생협이 연관된 학내 산업은 다양하고, 그 분야에 따라 수익도 다르다. 식당사업의 경우 2008년 기준으로 7억 정도를 손해를 봤지만 다과, 문구잡화 등 다른 분야에서 식당사업의 손해를 메우고도 남을 수익을 봤다. 이규선 차장은 “이 수익 중 대부분은 본부에 기부금 형태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비영리법인인 생협이 많은 수익을 내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시각을 제지했다. 실제로 생협은 본부에 06년도에 5억5천4백6십만원, 07년도에 6억6천5백6십1만5천원, 08년도에는 8억2천7백만원을 발전기금 등 기부금으로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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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생협 이규선 차장은 고생하는 식당 직원에 대한 학생들의 배려를 당부했다. |
국유재산법 통과와 법인화, 앞으로의 행보는?
2002년 이후 생협은 독자적인 비영리법인이었지만, 학교가 무료로 시설을 제공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기존에 국유재산 사용료가 면제됐던 생협에게도 사용료를 내게 하는 방향으로 하는 국유재산법을 지난 7월 31일자로 통과시켰다. 이를 적용하게 되는 내년 1월 1일부터 생협은 본부에 사용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식당의 식사 값과 같이 필수적인 요소의 값이 오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다. 이택만 사업부장은 “경영 상태 개선과 인건비 절감으로 가급적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부장은 “식당처럼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학교의 책임져야 하는 것이니 사용료를 받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현재도 식당 운영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법에 근거해서 궁여지책으로 최소한만 받기로 학교 측과 합의했다”과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전국 국·공립대 총장들은 생협이 국유재산 사용료를 전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만 비용을 부담하기로 합의문을 발표했다. 재무과 조귀장 씨는 “식당의 경우 조리공간에 대해서만 비용을 받고 홀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곳이므로 사용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밖의 것은 정확하게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울대학교가 법인화가 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복지과 정기현 사무관은 “서울대학교가 법인화가 될 경우에는 더 이상 국유재산법이 적용되지 않고 서울대학교 내의 규정에 의하여 처리될 것이기 때문에 사용료 문제도 다시금 논의될 것 같다”며 예상했다. 최근 본부 측에서 중요시 하고 있는 서울대 상표권은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 현재 생협에서는 기념품 사업에 있어서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법인화가 될 경우에는 어떤 측면에서든지 더 본부가 관여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규선 차장은 “기념품은 학교의 이미지와 연관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차후 본부 홍보팀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