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9월 4일 국회를 통과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이례적으로 체포동의안 처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신속히 가결된 것이다.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자 통합진보당은 이번 사태를 ‘신 매카시즘’으로 규정하고 총력 투쟁에 나섰다. 여파는 캠퍼스에까지 미쳤다. 통합진보당 학생위원회는 체포동의안 통과의 부당함과 공안당국을 규탄하는 내용을 담은 선전물을 배포하고, 관련 대자보를 학내 곳곳에 게시했다. 학생회관 1층에는 민주주의를 애도한다는 취지로 분향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9월 24일에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의 시국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학교 측에서 장소 대여를 불허해 논란은 더 가중됐다.

감정적으로 치닫는 논쟁, ‘종북’의 경계는 어디?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는 공안당국의 내란음모사건 수사 보도가 나온 후부터 논쟁이 격화됐다. 하지만 선거개입의혹으로 수세에 몰렸던 국정원이 전격적으로 발표한 이번 사건을 두고 논란은 혼탁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국면 전환용 물타기’라는 취지로 여러 건의 글을 올린 A 씨는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국정원이 면피용으로 꺼내든 색깔론 카드에 여론이 호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문제제기 자체가 ‘종북’세력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여러 건 올라왔다. 문제는 논쟁 과정에서 ‘종북’을 규정짓는 잣대가 자의적으로 적용되면서 감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최갑수(서양사학과) 교수는 “어떤 사람은 ‘종북’ 개념 자체가 허구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노무현 정권 사람들과 민주당 일부도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철수 옹호 전력이 있으므로 ‘종북’이라고 말하는 등 두서없는 주장만 공론장에 난무하고 있다”며 “‘종북’ 개념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북’ 개념을 즐겨 사용하는 보수진영에서는 ‘종북’ 혹은 ‘친북’세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크게 4가지 정도를 제시한다. 보수성향의 언론인과 보수단체, 새누리당 당직자의 주장에서 등장하는 ‘종북’ 세력의 기준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국보법철폐, 주한미군철수, 고려연방제 등 북한의 정치적 주장에 동조하는가 ▲한미 FTA, 강정마을 해군기지등 한미 동맹과 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에 반대하는가 ▲북한과 직접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일을 도모 하는가 등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조건 중 일부에만 해당해도 ‘종북’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네 가지 조건 모두에 해당해야 ‘종북’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협의의 종북’ 개념과 ‘광의의 종북’ 개념을 들고 나왔다. 변 대표는 보수성향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협의의 종북이란 김씨 일가를 찬양하며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이고, 광의의 종북이란 국보법 폐지,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안 등의 정책에 포괄적으로 동의하거나 지원하는 세력’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의 기준에 따르면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와 인권을 근거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진보 세력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광의의 종북’에 해당된다.
하지만 ‘종북’ 혹은 ‘친북’ 개념을 보다 엄밀히 적용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뉴라이트 운동의 전신인 ‘자유주의연대’에서 사무총장을 역임한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저서 《친북주의연구》에서 ‘종북’은 ‘친북’이 더욱 심화된 개념이라고 해석했다. ‘친북’세력 중에서도 북한 정권의 주장에 더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세력이 ‘종북’세력이라는 것이다. 홍 위원은 “친북 개념은 한국에서 반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면서 동시에 북한 주민의 이익에도 반하는 거의 범죄에 가까운 행위이기 때문에 가능한 엄밀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며 ‘친북’ 개념을 적용할 때도 엄격한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홍 위원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친북’을 ▲북한 정권의 이익, 유지, 강화를 최우선으로 놓는 행위 ▲북한 주도의 통일을 추구하는 행위 ▲이를 위해 의식적, 조직적으로 운동을 전개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홍 위원은 “김정일 정권의 유지가 한국의 안정에 이롭다는 식의 기술적 판단을 하는 상당수의 국민들과 지식인은 물론이고, 이에 입각하여 대북포용 정책을 펴야 한다는 정치 세력은 친북 세력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진짜 친북 세력과 명료한 구분을 위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 위원의 이러한 ‘친북’ 규정에 따르면 ‘친북’이 심화된 ‘종북’세력을 정의할 때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종북’ 개념 자체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노동당 정파 갈등을 연구한 책 《파벌》의 저자 정영태 인하대 교수는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진보진영에서는 ‘종북’이라는 단어로 ‘주사파’ 혹은 ‘자주파’ 세력을 규정지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악의적 보수세력에 의해 ‘종북’이라는 단어가 지나친 확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종북’ 개념은 진보진영 전체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임미리 씨는 “경기동부연합 등 일부 주사파 세력에게 ‘종북’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들에게 ‘종북’ 꼬리표가 붙은 것은 그들이 단순히 ‘주사파’여서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패권주의와 비민주성이 동시에 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종북’이라는 이름이 갖는 부정적 파급력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종북’ 꼬리표가 붙게 된 이유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양측에서 ‘종북’의 개념 정의조차 엄밀히 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에도, 이 개념은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종북’ 이라는 개념은 ‘북한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비합리적이고 반국가적인 집단’ 정도로 인식된다. ‘종북’이라는 꼬리표는 정치적 파산선고와 다름없기에 ‘종북’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갑수 교수는 “‘종북’ 개념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용어가 남발되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적용돼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아무 생각 없이 ‘종북’이라는 용어를 쓸 것이 아니라 개념적 정의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상에는 사상으로 대응해야 한다” vs “민주주의에 위협되는 생각 좌시할 수 없어”
공안당국이 공개한 ‘마포구 합정동 모임’의 발언에서 문제가 된 것은 폭력을 암시하는 듯한 대목이다. 국정원 녹취록에 따르면 ‘마포구 합정동 모임’의 강연자로 나선 이석기 의원은 ‘오는 전쟁을 맞받아치자’며 ‘빈손으로는 되지 않고, 정치 군사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권역별 토론에 참여한 인사들은 유류, 철도시설 타격 등 기간 시설 공격, 폭력적 대응 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은 이를 근거로 이석기 의원 및 관련 인사들이 형법상 내란음모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통합진보당 측은 이에 대해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적 발언이었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하부조직에 몸담았던 <자유조선방송> 이광백 대표는 “마포구 합정동 모임에서와의 발언과는 별개로, 진보진영 내 이른바 ‘주사파’ 혹은 ‘자주파’ 세력은 기본적으로 남한 내에서의 민중 폭력 혁명론을 주장하는 세력”이라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학생위원회의 관계자도 민중의 지지를 업은 폭력 혁명 노선에 대해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이광백 대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는 생각을 가진 세력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공론장에서도 논의 주체의 자격에 일정한 제한을 둬야한다는 것이다. 반면, 사상의 자유에는 원칙적으로 한계를 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노회찬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이 되는 폭력적 사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이 명백하다면 국가는 제제를 가할 수밖에 없고, 이는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라면서도 “사상이 실현되지 않고 단순히 사상 차원에 머물러 있을 때는 법률적 제제보다는 사상과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노 전 대표는 현재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다원적 민주주의에서는 어떠한 주장이든 공론장 위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하고, 비합리적인 주장들은 논리로 반박돼야 한다”고 밝혀 법률적 제제보다는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른바 ‘주사파’ 혹은 ‘자주파’ 세력의 견해가 공론장 위에서 논의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들이 자신의 사상과 노선을 국민 앞에 떳떳하고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세력이 자신들의 이념과 노선을 정치 전술적으로 위장한다면 공론장에서의 토론은 불가능해진다. 노회찬 전 대표는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정직하게 밝히지 않고 폐쇄적인 공간에서만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치 집단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로도 연결될 수 있다. ‘주사파’ 혹은 ‘자주파’ 세력의 주장이 공공연하게 논의될 경우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죄의 적용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알몸으로 서게하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른바 ‘주사파’ 세력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라며 이들의 주장이 공론장 위에서 논의되도록 두고 논리로서 대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종북’ 세력 축출하면 진보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진보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사파’ 혹은 ‘자주파’ 세력과 완전히 결별해야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진보진영이 ‘종북’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진보적 가치를 대중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이들 세력과의 절연을 시도해야한다는 것이다. 야권이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협조한 것이나, 국정원 선거개입사태 관련 대정부 투쟁에서 야권이 통합진보당과 선긋기를 시도한 것 등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평등파 계열은 과거 자주파와의 노선 투쟁 과정에서부터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는 북한 동조적 주장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사파’와의 결별이 진보 세력을 새로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까지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유조선방송> 이광백 대표는 “우리 사회는 그동안 진짜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 간에 토론이 이뤄지기보다는 20세기 냉전 이념에 매몰돼 색깔 논쟁만을 벌여왔다”며 “진보 세력이 주사파와 명확히 선을 긋는다면 보수진영의 맹목적인 색깔론 공세도 힘을 잃을 것이고, 이는 진보와 보수 담론이 한층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사파 축출론’은 결국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인하대 정영태 교수는 “주사파를 진보진영으로부터 축출한다고 해서 보수가 진보에 대한 색깔론 공세를 멈추겠느냐”고 반문하며, “이른바 ‘주사파’가 존재할 때는 보수가 색깔론 공세를 펼치면 주사파를 제외한 진보진영이 선긋기를 시도하며 진보적 가치를 계속 주장해나갈 수 있지만, 주사파가 축출되면 진보진영 전체가 보수의 색깔론 공세에 포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영국 노동당이 트로츠키주의자 등 급진 좌파를 축출한 뒤 보수화 된 사례와 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진보진영 내 급진 좌파를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뒤 공화당 장기집권이 이어진 것을 예로 들며 ‘주사파 축출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결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간에 기본적인 신뢰조차 형성돼있지 않다는 데 있다. 보수진영은 그들대로 진보진영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주장에 동조한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고, 진보진영은 과거 보수 정권이 자행한 공안 탄압의 기억으로 인해 보수진영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매번 반복되는 ‘종북’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합의점과 나아가야 할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소모적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종북’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여론의 우위를 점한 보수진영이 ‘종북’ 프레임에 자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열린 논의를 지향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 한 번의 ‘종북’ 논란을 맞이한 진보진영에서부터 합리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