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호
고문의 기억, 군사독재의 흔적을 찾아서…
그대 우리 가슴에 살아

고문의 기억, 군사독재의 흔적을 찾아서…

우리 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군사독재의 역사는 억압과 공포의 역사였다.그 역사의 중심에는 중앙정보부, 치안본부, 국군보안사령부가 서있다.억압과 공포의 도구는 ‘고문’이었다.그리고 이 ‘고문’은 군사독재의 시작이면서도 끝이었다.암울했던 역사 속 현장을 방문했다.치안본부 남영동 대공 분실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남영동 대공 분실.

우리 역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군사독재의 역사는 억압과 공포의 역사였다. 

그 역사의 중심에는 중앙정보부, 치안본부, 국군보안사령부가 서있다. 억압과 공포의 도구는 ‘고문’이었다. 

그리고 이 ‘고문’은 군사독재의 시작이면서도 끝이었다. 암울했던 역사 속 현장을 방문했다.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 분실

 서울시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남영동 대공 분실.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저서 ‘남영동’으로 유명한 남영동 대공 분실은 1970·80년대 공포의 상징이었다. 이곳에선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 각종 고문이 이뤄졌다. 주로 민주화 세력들이 고문의 대상이 됐다. 남영동 대공 분실은 서울대 미술대학·음악대학 건물을 설계하기도 했던 한국 건축의 거장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고문에 최적화된 설계가 됐다. 현재는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로 운영되며 고문이 이뤄졌던 공간 중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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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 복도. 크고 작은 취조실이 나열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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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이 이뤄졌던 5층은 매우 비좁고 긴 창문들이 배치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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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취조를 위해 연행된 사람은 정문이 아닌 건물 뒤에 따로 설치된 문으로 들어갔다. 이 문을 지나면 5층까지 바로 연결된 비좁은 회전 계단을 마주할 수 있다.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비좁은 계단은 연행된 자에게 공포를 유발하도록 설계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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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실 내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수사당국의 발표로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던 현장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군사독재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됐다. 비어있는 다른 취조실과 달리 시민단체에 의해 복원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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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 분실 바로 옆은 남영역이 있다. 남영동에서 고문당한바 있는 이선근 씨는 전철역에서 들려오는 ‘남영역입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이곳이 남영동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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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22일간 머물렀던 515호이다. 현재는 모두 치워져 과거의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남산 중앙정보부-안기부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역사는 5·16 군사 쿠데타와 함께 시작한다. 5.16 직후인 1961년 5월 18일 박정희는 육사 동기 두 명을 불러 미 중앙정보국(CIA)와 같은 정보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그해 설치된 중앙정보부는 남산에 둥지를 틀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국가정보부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의 상징으로 인식되자 ‘국가안전기획부’라는 이름으로 개편한다. 민주화 이후 1995년 내곡동으로 청사를 옮길 때까지 남산은 민주화 인사들에겐 공포의 공간이었다. 남산은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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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사찰과 수사를 담당했던 안기부 6국이 있던 장소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이 조사를 받다 지하 1층에서 고문을 당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시 도시안전실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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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청사 건물. 현재는 TBS 교통방송청사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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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청사 건물. 현재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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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으로 이동하는 길 한편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1조가 적힌 돌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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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안기부)의 남산 본관으로 이용됐던 건물. 이곳에서도 역시 고문이 자행됐다. 현재는 유스호스텔로 운영되고 있고 과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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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안기부)의 지하 벙커라고도 불린 이 건물은 지상의 출입구와 지하 3층으로 이뤄져있다. 지하 2층에는 취조실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서울종합방재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내부는 전부 리모델링돼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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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벙커를 지나면 짧은 터널이 나오는데 제5별관으로 이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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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제5별관 건물. 주로 조작간첩을 고문하는 곳으로 쓰였다. 현재는 서울시 남산별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

 1957년 육군특무부대가 설치한 서빙고 분실은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 6과에 소속됐었다. 군인에게는 물론 민간인에게도 고문이 자행됐던 곳이다. 이곳은 12·12 쿠데타 당시 전두환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 상관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불법 연행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90년 10월 서빙고 분실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그해 철거됐다. 이후 2004년 군인 아파트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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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빙고 분실이 자리하고 있던 부지는 현재 기무사령부(과거 국군보안사령부) 군인 아파트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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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편에는 아파트 완공을 기념하는 기무사령관 송영근의 ‘기념’식수가 심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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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서빙고 수사분실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 이 표지석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수많은 방첩인들의 땀과 혼이 서려 있는 터로서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이 표지석을 세운다’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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